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트릭 유잉 (문단 편집) === 유잉 무용론(Ewing Theory) === 사실 유잉은 좋은 스탯에 비해 실제 경기에서 영향력은 그리 높지 않았으며, 오히려 유잉이 없었을때 닉스가 더 나은 경기력을 발휘했다는 설. 유잉 무용론을 언급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빌 시먼스이다.[* http://proxy.espn.com/espn/page2/story?id=1193711][* 물론 시먼스가 이를 처음 언급한 것은 아니고, 후술되는 99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이후 유명해진 설이다. 그리고 그 이전에도 1994 파이널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슬금슬금 나오기도 했다.] 시먼스는 유잉이 빠진 닉스가 좋은 성적을 기록한 적이 있다는 걸 계기로 "스타 선수가 빠지고, 팬들/언론에서 끝났다고 하는데 오히려 팀은 잘 나갈 수 있다"는 Ewing Theory를 언급했다.[* 즉, 엄밀히 말해 정식 명칭은 "유잉 무용론"이 아니라 "유잉 이론"이지만 부정적인 뉘앙스가 숨어있는 건 마찬가지이다.] 또 그는 이 이론의 창시자로 본인이 아닌 친구 데이브 시릴리(Dave Cirilli)를 언급했다.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년에 기량이 심하게 떨어진 유잉은, 상성에서 밀리는 일부팀과 경기에서 기용을 제한적으로 하는 게 나을 '''수도''' 있다. 하지만, 전체적으로 보면 말년의 유잉이라도 평균 이상의 좋은 선수였고, 커리어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말도 안되는 소리일 뿐이다. 유잉 무용론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1999년 플레이오프,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이었다.[* 그 전까지는 까놓고 말해 잘하는데 우승 못한다고 까내리는 억지에 불과했다. 1994 파이널에서 못 했다고는 하나(공격한정. 수비와 리바운드는 평상시처럼 강력했다. 당시 기준 파이널 기록이었던 한 경기 8블록/시리즈 30블록을 기록할 정도. 평균 블록과 리바운드 둘 다 올라주원을 앞섰다), 플레이오프 전체에서 21.9득점 11.7리바운드 3블록을 기록했으며, 무엇보다 당시 닉스는 유잉의 부진 때문에 '''졌다.''' 유잉 무용론은 "유잉이 필요없다'는 이론이므로 유잉이 빠지고 나서 팀이 잘 나가야 성립하는 설인데, 이 때 닉스는 유잉이 빠지고 잘 나간 적이 없으므로 의미가 전혀 없다.] 당시 상황을 정리하자면, 닉스와 인디애나는 둘 다 당시 하프코트 팀이었다. 인디애나는 [[마크 잭슨]]이 볼을 피딩해주면 릭 스미츠-[[데일 데이비스]]/앤토니오 데이비스(후보)가 스크린을 걸어주는 사이 [[크리스 멀린]]과 [[레지 밀러]]가 볼을 받아서 슛을 쏘는 득점을 하는 구조였다. 닉스는 에이스 패트릭 유잉의 포스트업을 중심으로 [[커트 토마스]]가 파워 포워드로 받혀주고, 찰리 워드가 볼을 피딩하고 [[앨런 휴스턴]]-[[래리 존슨]] 듀오가 득점을 지원, 벤치에서 [[라트렐 스프리웰]]이 활기를 불어넣는 팀이었다. 그런데 이때 2차전 이후 부상으로 유잉이 빠지자 일시적으로 커트 토마스-크리스 더들리 체제로 갔다가 아예 더들리를 센터로 세우고 당시 스몰 포워드였던 존슨이 파워 포워드로 올라가고, 백업이었던 스프리웰을 스몰 포워드로 기용하는 스몰라인업을 세운 것이다. 문제는 당시 인디애나는 잭슨-밀러-멀린 트리오가 모두 30대 중반이라 운동능력이 떨어져서 20대 후반이던 스프리웰-휴스턴의 에너지 넘치는 백코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. 게다가 존슨은 원래 파워 포워드였던 선수라 오히려 스몰라인업의 4번으로 빛났다. 저렇게 되니 인디애나는 상성에서 밀리며 남은 네 경기에서 1승3패로 밀리며 탈락하고 말았다. 이 때 스몰라인업의 위력을 본 닉스는 다음 시즌 스프리웰을 주전 SF로 올리고 (그전까지 그는 슈팅 가드가 주 포지션이었다), 존슨을 붙박이 주전 PF로 쓰게 된다. 물론 센터는 유잉. 문제는 위에 언급된 대로 2000시즌에 인디애나와 플레이오프에서 재대결이었다. 앞서 언급된 대로 늙고 느린 인디애나는 오히려 유잉 위주의 느린 하프코트 오펜스는 감당할 수 있었으나[* 당시 인디애나하면 가장 먼저 레지 밀러가 떠오르지만 사실 인디애나는 골밑라인이 매우 두터운 팀이었다. 릭 스미츠, 데일 데이비스, 앤토니오 데이비스 3인방은 모두 올스타에 한번씩 선정된 (각각 98,00,01년) 수준급 빅맨들이었다. (다만 앤토니오 데이비스는 99시즌을 끝으로 이적해 00시즌엔 데일-릭의 듀오) 게다가 223cm에 달하는 스미츠, 211cm인 데일 데이비스의 빅 라인업은 전성기 유잉이라면 모를까, 30대 후반 노장인 유잉에겐 버거운 상대였다.], 에너지 넘치는 닉스의 스몰라인업을 감당하지 못했다.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컨퍼런스 파이널 6경기동안 닉스는 유잉이 빠진 두 경기(3,4차전)를 모두 이긴 반면, 유잉이 뛴 네 경기(1, 2, 5, 6차전)를 전패하고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고 유잉 무용론은 절정에 달했다. 이를 근거로 빌 시먼스는 다른 유잉 이론의 해당자를 언급했다. 여기서 언급된 선수들은 1997 드래프트에서 [[팀 덩컨]]에 이어 2순위로 지명된 [[키스 밴혼]], 대학 시절의 [[페이튼 매닝]], [[켄 그리피 주니어]], [[엘진 베일러]] 등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